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아티야 (문단 편집) == 생애 == 성을 보면 알겠지만 아시아계이다. 정확히는 아버지 셀림 아티야(1903–1964)가 [[레바논]] 정교회인으로 레바논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유학갔으며 영국 국적을 얻어 에드워드라는 영어 이름을 지었으며 스코틀랜드 여성 진 레벤스와 결혼해 4명 자녀를 두었다. 동생인 패트릭 셀림 아티야(1931–2018)는 변호사로 유명해 [[옥스퍼드 대학]] 법학과 교수 및 [[하버드 대학]] 법학과 로스쿨 교수로 일한 바 있다. 1966년 [[필즈상]]을 수상했다. 2019년 1월 11일, 89세 나이로 타계하였다. 사망 몇 개월 전에 [[리만 가설]]을 증명했다며 공개 발표를 하여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나 완전히 틀린 엉터리 증명이었다. 생전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들을 아는 수학도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언급을 회피하고 대부분의 언론들도 아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2022년 출간된 [[김민형]] 교수의 책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에서 김민형 교수와 말년의 아티야가 교류하던 이야기가 부고와 같은 형식으로 실려있다. 말년의 리만 가설 소동에 대해 김민형 교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으나, 아티야는 말년에 수학과 물리학을 통합할 수 있는 통일 이론이 존재할 것만 같은 영감에 늘 흥분한 상태였으나 그 열정이 지나치며 수학적 오류를 제법 범해 젊은 수학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고, 수학적 영감만을 중시하느라 구체적 논리의 오류는 중요치 않다는 외골수적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했다. 아티야가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 이어진 교류에서 스스로도 여러 이론과 난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영감을 받았으나 이는 지나치게 뜨거워 궁극적으로 성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영감에 불과하다며 자신의 연구에 대해 냉철함을 잃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